아내가 이번에 아동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동기생들과 사전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는데 아내가 발표 준비하는 것을 옆에서 힐끔힐끔 보다가 무척이나 흥미있고 중요한 내용을 발견하게 되었다.
엡스타인이라는 학자에 따르면, 출생 직후 아동은 부모와의 애착관계를 형성하면서 "세상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한 세상에 대한 이론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되는데,
(1) 세상은 살만한 곳인가
(2)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질서인가 혼돈인가
(3) 세상 사람들은 착한가 위협적인가
(4) 나는 가치있는 존재인가 아닌가
이상의 4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이론)이라고 한다.
평생에 걸친 세계관을 결정지을 정말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모든 심리학자들이 엡스타인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3),(4) 2가지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하는 모양이다.
유아기에 어떤 애착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에 대한 관념'와 '타인에 대한 관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좀 더 깊게 들어가보면,
'자신에 대한 관념'은 상대적으로 좀더 오랫동안 형성된다고 한다. 0세때부터 시작해서 6~7세때까지 지속적으로 가다듬어 진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관념'은 상대적으로 훨씬 빨리 완성돼 버린다고 한다. 보통 생후 18개월~24개월 사이에 이 관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따듯한 애착관계를 갖지 못한 아동은 "세상 사람들은 나에게 위협적이다."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요즘 세상이 크게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대개 출산 후 2~3개월 남짓한 짧은 휴가를 거친 후 직장으로 복귀한다.
이 2~3개월 기간 중 상당 기간은 산후조리원에서 아이랑 격리된 채 보내니 실질적으로 직장맘들은 출산 후 아이와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채 직장생활로 돌아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엄마가 출근 한 이후의 공백을 메꾸는 것은 대개 늙은 할머니들이거나 연변 아줌마들이다.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는 피붙이인만큼 열심히 아이를 돌보긴 하지만, 아무리 그런다고 해서 엄마만큼할 수는 없다.
혈연이 아닌 중국 아줌마들이야 오죽하겠나. (중국 아줌마들이 엄마 없을 때 애들을 얼마나 막대하는지 수없이 엽기적인 사례들이 회자되고 있다.)
타인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긴인 0세에서 3세 사이의 시기에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아이들은,
엄마아빠와의 정상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채, 제3자에 의해서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된채 반쪽짜리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다.
지금 시대 상당수의 어린 아이들이 타인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갖게될 수 있는 리스크게 처했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중학생들의 엽기적인 '졸업빵'이 화제다. 악감정을 품고 있는 동급생의 옷을 벗기고, 또 힘이 약한 애들을 단체로 옷을 벗겨서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고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계없이 인터넷에 유포시키는 10대 초반의 애들이 존재한다는 견디기 힘든 참혹한 뉴스들이다.
뉴스 속 엽기적인 아이들의 무서운 행동들이 혹시 아동기에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한 '타인에 대한 관념'때문은 아닐까. 각박한 현실 속에서 경제적인 문제에 쫓겨 어쩔 수 없이 걷지도 못하는 아기들을 다른 사람 손에 맞기도록 강요하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이 사회를 책임질 아기들을 집단적인 애착관계 부족 상황으로 몰아붙여 결과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무서워하고 증오하는 세상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연변 아줌마들을 baby sitter로 고용하고 있는 직장맘들은 내 주변에서 널리고 널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나 역시도 잘 알고 있다. 육아에 희생된 똑똑한 여성들의 멋진 비젼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희생을 동반하는 일이 아닐까. 남편과 아내가 서로 그 희생을 조금씩 나눠 갖고, 또 주변 가족들과 이 사회가 그 희생의 부담을 덜어줘서, 아이들이 정상적인 관념, 세상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을, 지금 우리들이 최우선적으로 해야되는 것이 아닐까.